만화영화 배트맨 시리즈의 주인공 브루스 웨인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습니다. 웨인의 부모는 고담시의 우중충한 뒷골목에서 악당의 총격을 받고 죽었습니다. 웨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입니다.
웨인은 악당을 물리쳐 정의를 구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배트맨이 됐습니다. 매트맨은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수 있도록 개발한 수트, 자동차, 오토바이, 장갑차, 비행기,잠수함을 모두 동원해 악당과 싸웁니다. 그렇게 생포한 악당을 재판과정도 거치지 않고 사설 감옥에 가둡니다. 악당들은 결찰보다 배트맨을 더 두려워 합니다.
배트맨의 은밀한 영웅 행세는 부모의 유산이 있어 가능했습니다. 부모는 자본과 명성을 모두 가진 고담시의 재력가였습니다. 배트맨은 악당의 습격으로 저택이 불타고, 주식 폭락으로 회사가 파산해도 가문의 명성을 앞세운 후원회 한 번이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배트맨은 금수저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악당, 또는 의적으로 행세하는 음지의 동료들을 붙잡고 자신의 비극적인 어린 시절을 구구절절 읊조리며 “올바른 삶을 살라”고 말하는 배트맨의 훈계엔 설득력이 없습니다. 트위터 네티즌들은 24일 ‘금수저와 흙수저의 입장 차이’라는 제목으로 배트맨과 캣우먼의 대화를 그린 만화 두 컷을 놓고 냉소를 지었습니다.
배트맨은 부패한 정재계 인사들의 금고를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뿌리고 자신의 생계까지 해결하는 음지의 동료 캣우먼을 붙잡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부모를 여의었는가? 나도 그래. 하지만 나는 다른 길을 선택했지. 인생엔 기회가 많아. 당신도 바꿀 수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마음속 깊숙이 있는 선한 의지를 감추고 금고털이범으로 사는 캣우먼에게 계도를 시도한 겁니다. 시도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캣우먼은 이렇게 되받습니다.
“오 그러셔? 어느 고아원에 있었는데?”
웨인은 말을 잇지 못합니다. 자신과 다른 캣우먼의 처지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웨인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악당을 물리치고 돌아갈 곳은 고담시의 전경을 내려볼 수 있는 산중턱의 대저택입니다. 테라스엔 집사 알프레도가 은쟁반에 담아 준비한 커피, 크루아상이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지만 안 먹어도 그만입니다.
반면 캣우먼이 악당과 싸우고 돌아갈 곳은 고담시 뒷골목의 쪽방입니다. 밀린 월세 탓에 주인의 눈을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창문을 넘어 들어갑니다. 그렇게 들어간 집은 비좁고 어둡습니다. 냉장고엔 당장 먹을 요깃거리도 없죠.
이런 캣우먼에게 취미로 정의를 구현하는 배트맨의 훈계는 피곤합니다. 네티즌들은 “배트맨 극혐” “죽창을 들라”며 캣우먼의 편을 들었습니다. ‘죽창’은 흙수저의 반발을 의미하는 인터넷 신조어입니다.
배트맨과 캣우먼의 대화 속에서 드러난 금수저와 흙수저의 입장 차이는 만화 속 비현실이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정재계 인사들의 자녀 이름을 검색하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사원에서 임원까지 초고속으로 승진하고, 결국 수년 만에 경영권까지 잡은 과정을 ‘자수성가’라고 포장한 재벌 2~3세들의 무용담은 흙수저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나도 신입사원에서 시작했다.” “누구든 도전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취업의 좁은 문조차 뚫기 어려운 대부분의 젊은이에게 재벌 2~3세의 이런 말들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금수저가 가업 승계의 당위성,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큰 결심을 내리고 선택한 신입사원이 흙수저들에겐 꿈이기 때문이죠.
1996년 전미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 댈러스 카우보이스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베리 스위처 감독은 “어떤 사람들은 3루에서 출발했지만 스스로 3루타를 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3루에서 출발한 사람이 출루를 목표로 타석에 들어선 사람에게 “너도 득점할 수 있다”고 말하면 서운하다는 것이죠. 3루에서 출발한 사람은 희생플라이 정도로 가볍게 득점할 수 있지만 타석에 있는 사람은 홈런을 치고 베이스 3곳을 돌아야 홈을 밟을 수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배트맨의 옳은 말보다 캣우먼의 냉소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