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경향신문 2010년 4월 23일 31면 기사를 직접 작성한 글로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의 글입니다.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한 방송사의 PD가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스스로 목을 매거나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노동자들의 삶과 주변의 모습을 100여개의 테이프에 담았지만, 도대체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느 일요일 우리 연구소에서 만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두어 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 그 PD가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 그럼 이제 분신한 노동자나 스스로 목을 맨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해주십시오." 그 물음에 나는 겸손하게 답했다. " 그 노동자들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몇 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1년 반 동안이나 수배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른 사람이나, 129일 이나 골리앗 크레인 꼭대기에서 외로움을 견디다가 목을 매야 했던 노동자의 심정을 내가 어떻게 몇 분의 일이라도 짐작할수 있겠습니가? 짐잘할 수 있다면 교만이겠지요." 내 말을 들은 그 PD는 푸념하듯 그러나 조금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 내가 지금 어떻게든 그걸 한번 해보겠다고, 이렇게 돌아나니고 있는거 아닙니까...."
아, 나는 부끄러웠다. 30년 가까운 알량한 노동운동 경력이 그 PD 앞에서 단번에 무너져 내린 이유가 무엇일까? 직접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컸던 것이다. 1년 반동안이나 수배 생활을 하다가 분신한 노동자집에 찾아가 무심코 냉장고를 열었을 때 곰팡이가 하얗게 덮여있는 반찬들, 졸지에 아빠를 잃은 세 어린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눈망울들을 직접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사이에는 마치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을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백문불여일견이다. 더 나아가 천사불여일행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MBC 노조의 파업 현장에 최소한 한번쯤 찾아가봐야 한다. 매주 수요일 저녁 여의도 MBC 앞에서 열리고 있는 '공영방송 MBC 지키기 촛불문화제' 에 최소한 한번쯤 참석해 봐야 한다. 그곳에서 언론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벌이고 있는 바른언론을 지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열기를 한번이라도 직접 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사이에는 산 것과 죽은 것만큼의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18개 지역 계열사들까지 모두 참여한 이번 MBC 파업처럼 강고한 파업을 최근 몇 년 동안 본 적이 없다. 백령도 천안함 사건 못지않게 중요한 우리 사회 최대의 현안이다. 그럼에도 신기할 정도로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들이 MBC 파업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러한 현실이 오히려 MBC 노동자들의 파업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내가 지금 어떻게든 그걸 한번 해보겠다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거 아닙니까............." 그 몇마디 말로 그 뒤 몇 년 세월 동안 기억날 때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그 PD가 바로 지금 옹골찬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노조의 이근행 위원장이다. 그PD의 얼굴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MBC 파업 현장에서 과거의 인연을 더듬다가 몇 년 전의 그 장면이 선명하게 되 살아났다. " 아. 그때 저한테 '내가 지금 어떻게든 그걸 한번 해보겠다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거 아닙니까.....' 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 예, 그 비슷한 말을 했었습니다." "MBC가 죽으면 우리 사회 언론 전체가 죽는것이다. MBC를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개, 돼지가 되는 것이다. MBC는 국민의 희망이다. 국민들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즐겁게 투쟁하자 !" MBC노조 이근행 위원장의 말이다.